전술없는 전략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1월 4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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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마이클 하트. ⓒ Weltx-Rombach/Werner, 알렙출판사 제공

MACE's life blog

그리스어 strategia(將帥術)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 전략이란 용어는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술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8세기 말까지의 전쟁은 이와 같은 의미로서만 통하였다. 그러나 전략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동적(動的)인 것이기 때문에 전술이 복잡해지고 다양화됨에 따라 전략의 개념도 점차 변화하였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생각했던 전략적인 문제가 그 본질에 있어서 오늘날 개념으로는 전술적일 수가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무기기술이 발전되었듯이 전략의 개념도 발전되었으며, 또한 전략은 군사적 개념으로서의 통규(通規)를 벗어나 기업전략 등 비군사적 분야에도 응용되고 있다. 전략은 적용되는 차원에 따라 대전략(전술없는 전략 大戰略)·국가전략(國家戰略)·군사전략(軍事戰略)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전술 [戰術, tactics]
전투에서 병력을 운영하는 기술.

작전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 부대나 개인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배치·기동·운영하는 방법과 기술을 뜻하며, 전투행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행정과 구분된다.

또한 전술은 국가 차원의 종합적이고 광범위하며 장기적인 계획 및 운영을 의미하는 전략과는 달리, 국부적이고 단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전략이 전쟁목적의 달성에 목적을 두는 데 반하여 전술은 적의 병력을 격멸함으로써 전략목적을 달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따라서 적의 공중세력이 우세한 전투에서 부대를 산개(散開)시키거나, 위장(僞裝)을 하는 행위, 또는 어떤 군사목표를 탈취하기 위해서 보병부대가 공군이나 포병·기갑부대와 협조하는 행위 등을 전술행위라고 한다.

그리고 전략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특정 지역을 확보하거나 긴요한 고지 등을 점령하기 위한 작전을 전술작전, 그와 같은 공격목표를 전술목표, 전술작전을 위해서 사용하는 무기를 전술무기라고 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전략가들이 말하는 전략적 사고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전투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기(機)를 보고 병사를 움직여야 하며, 묘책은 현장에서 상대를 보며 생각해내야 한다.

마속이 병서를 숙독하여 이론으로는 제갈량을 따르지 못할 정도였지만 참패를 당히기 일쑤였다. 전쟁에는 선례도 없고, 병사를 다루는 데 짜여진 틀이 없기 때문이다.

은 우리 뿐만 아니라 적들도 읽지 않는가?

전략은 상아탑의 살균된 환경이 아닌 시장의 진흙탕에서 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지나친 분석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으며, 전략 계획의 실패는 형식화가 낳은 결과이다.

(참고 : 전략기획전문가 조철선의 전략 기획 노트)

전략은 전쟁 목적 달성에 목적을 둔다면, 전술은 전략의 세부 항목을 달성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전략에 현실이 반영이 안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이며, 전술에만 급급하다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여 역공을 당하거나 포위당하기 쉽상일 것이다.

[비즈노컨설팅] 비즈니스의 전략과 전술을 알라.

 전략이나 전술이라는 말은 오랜 인류의 전쟁역사 속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말이다. 싸울 전(戰), 지혜 략(略), 즉 싸워서 이기기 위한 지혜를 전략이라고 한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지혜는 눈에 보이는 요소가 아니다. 즉, 전깃줄은 보여도 그 속에 흐르는 전기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보이지 않기에 학습하기가 쉽지 않고, 실제 경제현실에서는 더더욱 가르쳐 주는 이도 없고 배울 만한 곳도 없는 것이 전략이다. 비즈니스 전략없이 사업을 한다는 것은 맨몸으로 맹수들의 우리에 뛰어드는 격이다.

이순신 장군은 틈나는 대로 병서를 읽었으며 전략을 구사할 지형 연구에도 빈틈이 없었다. 훌륭한 장군은 끊임없이 싸움의 방법을 연구하고, 싸움이 벌어질 현지를 답사한다. 마찬가지로 성공하는 사장은 부단히 사업 성공전략을 연마하고, 사업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간다.

총검술, 사격술, 비행 기술 등 싸우는 기술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요소로 영어기술과 같은 것이다. 영업 기술은 땀 흘려 노력하면 그 향상됨을 눈으로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공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제품을 가공하는 경우, 우선 기계나 공구를 사용하는 손놀림이나 몸놀림을 반복적으로 행하므로 익숙해짐을 눈으로 볼 수가 있다.

영업사원의 경우, 거래처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거나 신규 거래처를 개척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영업이 능숙해짐을 볼 수가 있다. 이처럼 전술에 있어서의 요점은 업무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많은 작업량의 경우, 속도를 빨리 하고, 대기 시간과 낭비 시간을 적게 하며, 불량품이나 실수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업무의 능률적인 관리를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술을 통제하는 것은 누구인가? 종업원 4명 이하의 초미니 기업은 당연히 전술의 관리도 사장이 해야 하지만 종업원이 20명, 20명 정도가 되면 과장이나 대리에 해당하는 업무의 직책이 생긴다. 이들의 역할은 사장의 방침에 따라 부하직원을 교육시키며 부하를 움직이는 것이다.

북·러가 집착하는 ‘전술핵무기’, 전략핵보다 더 위험한 이유

많은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침공 사흘 만에 “핵 억제력 부대의 특별 전투임무 돌입을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지시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 뒤 푸틴 정권은 “전술없는 전략 현 단계에선” 핵무기를 사용할 의사가 없다고 밝혀왔다. 이는 러시아가 당장은 핵공격을 하지 않겠지만, 전세가 뜻대로 전개되지 않으면 핵을 동원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낳는다.

푸틴 정권의 언행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미친 자의 이론’(madman’s theory)을 떠올리게 한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두려움을 자극해 협상력을 극대화해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 국장인 스콧 베리어 중장은 3월 중순 의회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적들을 위협하는 동시에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으로 상대가 종전 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기 위해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미지의 영역이지만, 앞으로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러시아의 재래식 군사력은 약화되는 반면에 나토의 군사력은 크게 강화될 것이다. 이에 대응해 러시아는 핵무기, 특히 전술핵의 비중을 대폭 높일 것이다. 전술핵을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이퀄라이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가시화되면 냉전 시대에 버금가는 핵전쟁의 공포가 유럽을 비롯한 지구촌을 또다시 배회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최근 전술핵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일 것이다. 그 시발점은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였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한의 첨단무기 도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현대전에서 작전임무의 목적과 타격 대상에 따라 각이한 수단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전술핵무기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공개적으로 전술핵 개발 의사를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의 최근 발언도 주목된다. 4월4일자 담화에서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총포탄 한발도 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남조선이 우리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하는 상황이 온다면 부득이 우리의 핵전투 무력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말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4월16일에 신형 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를 실시했는데, 이 무기의 개발을 두고 “전술핵 운용의 효과성”을 강화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단거리 미사일에 전술핵탄두 장착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전술핵에 집착하는 것일까? 미국의 핵 전문가인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의 앙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세가지 이유로 분석한다. 첫째는 월등한 군사력의 우위에 있는 한-미 동맹과의 군사력 균형을 최대한 맞추고, 둘째는 한-미 동맹의 공격을 억제하며, 셋째는 억제 실패 시 북한이 핵무기를 동원할 전술없는 전략 수 있다는 의지를 과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전술핵 개발 방침이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특별히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석은 전술핵이 등장하게 된 역사적 배경과 맥락이 닿아 있다. 전술핵은 한국전쟁 때 최초로 등장했다.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은 핵무기 사용 여부를 놓고 고심에 빠졌다. 공산군을 괴멸하려면 핵무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존의 핵무기는 파괴력이 너무 커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방식이 파괴력을 크게 낮춘 전술핵이다. 이를 주도한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은 1951년 2월 ​“육군이 곧 사용 가능한 핵폭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이듬해에는 핵대포 실험에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전략핵’과 ‘전술핵’의 구분도 생겼다. 전략핵은 적대국이 전쟁을 결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발로도 대도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파괴력이 엄청나다. 이는 거꾸로 사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략핵을 ‘사용할 수 없는 무기’(unusable weapon)로 부르는 이유이다. 반면 전술핵은 콜린스가 말한 것처럼 ‘사용 가능한 무기’(usable weapon)로도 불린다. 그래서 전술핵의 파괴력은 전략핵보다 약하지만 위험성은 더 크다.

적대국의 전술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면 위협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냉전 시대에는 군비경쟁 못지않게 군축 협상도 활기를 띠었었다. 신냉전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군축 협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전술없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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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4.26 00:00
  • 댓글 0

■ 어셈블리: 21세기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에 대한 제언 |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저 | 이승준·정유진 옮김 | 알렙 | 584쪽

2010년대 들어 전 지구적으로 이어진 투쟁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었다. ‘아랍의 봄’으로 부터 시작해 스페인, 그리스로 이어졌으며, ‘월가 점령’, 홍콩의 ‘우산혁명’과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블랙라이브즈매터’가 출현했다. 2016~2017년 박근혜 정부에 맞선 한국의 ‘촛불집회’ 역시 무관하지 않다. 이른바 ‘지도자 없는 사회운동’이다. 이 운동들은 권위적인 지도자의 실각, 진보적인 정책의 도입, 억압적인 국가권력의 저지 등 인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그러나 창의적인 좌파 사상가들인 저자 네그리와 하트는 이 책에서 이 운동들이 새롭고 진정으로 민주적이며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해 왔다고 진단하면서, 우리는 리더십과 제도의 문제를 대면해야 하며, 과감히 다중의 기업가 정신(the entrepreneurship of the multitude)을 상상하고, 낡은 말들을 전유해 그 의미를 역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이제 지도자와 다중의 역할 전도가 필요하며 나아가 그것을 장기적 안목에서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한마디로 다중이 전략을 주도하고 지도자들은 전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최근의 전술없는 전략 이러한 사회적 투쟁에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부터 ‘공통적인 것’을 지켜내려는 열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세계의 대안과 그것을 현실화할 정치적 주체의 창출로서 ‘다중의 군주 되기’를 얘기한다. 이 군주는 다중의 열정에게서 태어났다. 이는 오늘날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이한 형태의 저항과 투쟁이 마디마디 이어져서 이루어진 정치적 결합체를 가리킨다. 저자들은 발언과 연결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 정치적 표현의 한 형태로 ‘어셈블리’(assembly)를 제시한다. 오늘날 집회/모이기(assembly)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구성권력으로 나타난다. 이 구성권력은 단순히 헌법을 제정하는 전술없는 전략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권력을 장악해 그로부터 자유, 평등, 민주주의, 부 등의 의미와 내용을 새롭게 재편할 제도화로 나아갈 잠재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도화는 주어진 주체성 형태를 계속해서 갱신할 수 있는, 존재론적으로는 자연-인간-기계의 결합으로서, 인간 형태로는 정체성이 지닌 소유적 성격을 넘어서는 복수적이며 교차하는 특이성들의 결합으로서, 생산 형태로는 인지노동과 정동노동이 구현하는 인간생성적 생산, 삶 형태의 생산의 활성화로서, 법과 권리 형태로는 공유지, 공유재, 공통적인 것을 다중에게 위임하는 공통권의 확립으로서 구체화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마이클 하트. ⓒ Weltx-Rombach/Werner, 알렙출판사 제공

▲ 안토니오 네그리(왼쪽)와 마이클 하트. ⓒ Weltx-Rombach/Werner, 알렙출판사 제공

이 책의 주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네그리와 하트는 전통적인 중앙집중화된 ‘리더십’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정치조직과 전술없는 전략 제도에 대한 포기 즉 ‘수평주의의 물신화’로 이어지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전략과 전술의 전도’를 제안한다. “운동에게 전략을, 리더십에게 전술을!” 지도부가 전략을 담당하고 대중이 전술을 담당하던 과거와 달리 다중이 전략을 담당하고 지도부가 전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저자들은 오랫동안 ‘구성권력(constituent power)’ 개념을 통해 ‘구성된 권력(constituted power)’이나 ‘입헌권력(constitutional power)’과 구별되는, ‘혁명적 사건’을 통해 표출되는 저항자들의 활력이나, 법과 규범, 제도를 구축해내는 법질서로부터의 예외적 힘을 지시해 왔다. 그들은 ‘구성권력’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전 지구화의 몇 가지 측면”이 “구성권력 개념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셋째, ‘정치적인 것의 자율’을 비판한다. 이 책은 시위와 반란의 목소리가 자본이나 신자유주의의 흡수 논리를 따라 포섭되거나, 기존 권력의 반혁명으로 좌절되거나, 아니면 사회운동들을 모방하고 등장하는 보수주의의 득세로 위축될 때, 좌파의 대안으로 등장하곤 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과 대결한다. 신자유주의가 전통적인 주권권력을 붕괴시키고, 그래서 전 지구적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정치적인 것의 자율’은 묵시록적인 분위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하나의 역설이 존재하게 된다. 즉 시위와 사회운동이 ‘정치적인 것의 자율’에 맞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킬수록,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역설이 그것이다. 네그리·하트는 이러한 역설적 상황을 돌파하는 방법은 결국 저항자들의 조직화와 그들의 생산적 잠재력에 더 많은 힘을 부여하고, 그래서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게’ 하지만 ‘다르게 잡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주권권력으로 흡수·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다중들이 비주권적 제도들을 발명할 수 있도록 ‘권력을 잡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 금융과 화폐의 문제가 상세하게 분석된다. 금융과 화폐를 자세히 분석하는 이유는 자본으로서의 측면 말고 화폐가 가진 다른 측면 즉 “사회적 관계를 제도화하는” 능력을 살려서 “공통적인 것의 화폐”를 발명하는 실천적인 목적에 있다.다섯째, 공통적인 것과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대립이 더 분명히, 따라서 더 간명하게 제시된다. 공적인 것이 사실은 사적인 것을 가리고 보호하는 도구로 등장했음을 분명히 한다. 그리고 사유재산의 ‘주권적’ 성격을 밝힌다. 따라서 공통적인 것과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대립은 공통적인 것과 사유재산의 대립에 다름 아니다. 여섯째, 사회적 투쟁의 형태에 대해서는, 새로운 조직화의 유형으로 ‘사회적 연합주의(social unionism)’가 제시되고 그 무기로서 이전 총파업의 새로운 형태인 ‘사회적 파업(social strike)’이 제시된다. 물론 이는 모두 출발점들이지 그 자체로 충분한 대안들이 아니다.일곱째, 자본가들이 예전에 하던 기능인 생산 요소들의 결합을 이제는 생산자들 자신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음을 ‘다중의 기업가정신/활동(entrepreneurship of the multitude)’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최종적으로 네그리와 하트는 새로운 군주가 대항권력을 갖게 되는 경로를 밝힌다: “다중의 구성이 대항권력을 구축할 것이라는 점을 긍정한 뒤에 우리는 현재의 투쟁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대항권력들의 놀이가 조화롭거나 선형적인 것으로는 인식될 수 없다. 대신 대항권력은 자본주의적 주권을 전복하려고 노력하면서 항상 적대적으로 기능해야 한다. 이때의 전복은 투쟁을 이동시키는 것, 즉 그 관점을 사회투쟁들의 수평축을 권력투쟁의 수직축으로 변형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결국 새로운 군주로 행위하는) 다중이 표현하는 대항권력은 기획을 발전시키며, 지배의 장(場) 안에서 그에 맞서 자신의 힘을 표현한다. 그 힘은 사회 전체로 수평적으로 확대되고 명령의 형태로 수직적으로 뛰어오른다. 새로운 군주는 (1) 수직축을 공략해 억압적 권력을 비어내야 한다. (2) 수직축에 맞서 사회적 생산·재생산의 수평축에서 형성되는 대항권력을 구축해야 한다. (3) 대항권력의 구축이 성취되었을 때에만 새로운 군주는 구성권력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15년 전, 중국의 저널리즘 스쿨로 유명한 한 대학에서 유학할 당시, 매일 아침 친구따라 습관적으로 강의실 앞 매점에서 구입했던 신문이다.

학과 친구들은 중국의 젊은 세대답게 보도에 대한 비평을 서슴치 않았고 '편식적 신문읽기(관영지 기피)'를 했던 것에 비하면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인기있는 신문이었다.

몇 년 전 중국 언론 검열에 항의하다 파업 사태까지 이어졌던 중국 광동(廣東)성 주간지 난방저우모(南方周末)와 더불어 '비교적 객관화된 신문'이란 점을 그 당시 친구들은 들었다.

당시 환구시보에 전술없는 전략 대한 친구의 주장은 '중국에서 외국 언론의 시각을 중국어로 중국인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신문'이었다. 동시에 중국의 생각을 해외에 알리는 신문이기도 했다.

요즘의 환구시보는 해외 필진의 글을 싣기 보다는 중국 정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기 꺼려하는 사안마다 그 '입'을 대신하고 있다.

이런 환구시보가 최근 '의미심장'한 견해를 밝혔다.

지난 22일 환구시보는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는 '외과수술식' 공격에 대해 중국이 용인할 것이지만, 전면전에는 반드시 개입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환구시보의 이 같은 보도로 '중국이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을 용인하는 것이냐' vs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개입 의지를 드러내 전면전으로의 확대 가능성이 커졌다'라는 두 가지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선제타격 용인'설을 보면 마치 중국의 대북(對北) 전략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반면, '미국 군사행동에 대한 개입 의지'설을 보면 여전히 중국과 북한은 피로 맺은 혈맹국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고, 북한에 대한 강한 제재의 입장을 밝힌 중국의 태도를 보면 이 같은 발언은 이해가 가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안보를 제공받고 한국이 가진 일정 부분의 정책 자율성을 양보하는 '비대칭형 동맹'을 맺고 미국과 있다.

그렇다면 북한과 중국은 어떨까.

과거 6·25전쟁을 거친 북한과 국공 내전의 쓰나미에서 헤어나온 중국은 대칭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과의 동맹 유지과정에서 자율성을 침해받을 수 있다고 느낀 북한은 여러 위기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들의 정치이념으로 불리는 '주체사상'과 정권의 공고성은 대중 의존도의 상승으로 위협을 느꼈고, 중국과 나름의 '동등한' 관계 유지하기 위한 필사적 도구가 필요했다.

바로 핵이다. 다시 말해 북핵은 미국과 남한을 넘어 동맹국인 중국을 향해 있기도 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로 인해 동맹 강국으로서 북한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축소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은 슈퍼 강국이 된 중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비대칭동맹'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약자'의 힘을 키워내 동등한 입장에 섰다.

북한을 '지렛대'로 이용해 미국과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국은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중국역할론'에 못 이겨 강한 제재를 통해 북한 옥죄기에 나설 것이라고 큰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 등으로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해지는 지금, 중국으로선 새로운 '전술'을 전술없는 전략 짜야만 한다.

북한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중국의 대북 전략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중국이 취할 수 있는 전술에는 무엇이 있을까.

북한에 대한 실질적 타격은 안 된다. 북한의 동란이나 정권붕괴 등을 방지해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중국의 대북 전략차원에서다.

이런 까닭에 중국의 제재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실질적 타격보다는 대외적으로 강한 제재 이미지에 그칠 것이다.

사실 중국으로서는 북한문제 때문에 군사적으로 충돌하지 말자는 데 대해 미국과 합의만 이뤄진다면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방안이 최고의 '전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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